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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리의 ‘밥 잘 먹고 잠 잘 자면’ 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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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케이아이
작성일25-06-30 10:32 조회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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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리의 밥 잘 먹고 잠 잘 자면화제

27년 만에 복귀한 가수 이창홍의 신곡

잘 먹고 잘 자면 그게 행복이라 갈파

밥 잘 먹고 잠 잘 자면 그게 바로 행복한 인생이야!”라고 외치는 노래가 등장했다.

 

걸걸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에서 깊은 내공이 느껴진다. 젊은 사람들은 잘 이해하질 못할 것이다. 나이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곡의 노랫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공감을 한다는 걸.

 

지난 1980년대 활동하던 쉘부르 출신의 통기타 가수 이창홍이 느닷없이 나타나 빛과 소리라는 새로운 예명으로 발표한 모던 록 스타일의 신곡 밥 잘 먹고 잠 잘 자면’(박관서 작사·이정욱 작곡)에 얽힌 사연을 소개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발표한 곡이 포크송 가짜와 진짜’(최정천 작사·)였다는데 언제였는지 잘 생각나질 않는단다. 자료를 찾아보니 1998년으로 나오는데 무려 27년 만에 가수로 복귀한 것이다.

 

삼성영상사업단을 통해 야심적인 7번째 앨범을 만들어 막 홍보를 준비하고 있는데 회사가 부도로 문을 닫고 말았다. 크게 실망해 가수 활동을 포기하고 음반제작자로 변신했다. 대학가의 포크싱어 지망생들을 발굴해 작사 작곡도 해주고 음반도 기획해 제작하곤 했다.

 

신곡을 만들고 다시 가수 활동을 준비하고 있는데 주위에서 그 나이에 뭘 또 나서느냐? 노욕 아니냐?”라면서 만류하는 사람들이 많아 망설였다. 그러던 차에 포기하지 마세요라는 막내아들의 한 마디에 자신감을 얻어 나서게 되었다.

 

빛과 소리라는 예명은 장흥에 있는 청련사의 해경스님이 이름을 바꿔보라면서 지어주셨다. 그 노스님의 빛과 소리 어때?”라는 말씀에 주저 없이 새 예명으로 채택했다.

 

이창홍이란 이름도 요즘 가요팬들에겐 무척 낯선 이름이다.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이치권이다.

 

1967년 서울 무악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시립소년소녀합창단원으로 선발됐다. 한영중학교 1학년 때까지 합창단원으로 활동을 했다. 1969년 합창단원으로 공연을 할 때 KBS가 이치권 소년이 독창하는 모습을 찍어 방영을 했다.

 

덕택에 KBS TV 어린이 드라마 착한 마음 고운 마음’(정일택 연출)에 아역 탤런트로 출연해 주연을 맡았다. 이때부터 이창홍이란 예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창홍은 1969년 여름 두 편, 1970년 겨울 두 편의 어린이 드라마에 출연하며 본격적인 연기자 생활을 시작해 영화계에도 진출했다.

 

임권택 감독의 한국 대만 합작영화 신풍협객을 시작으로 정인엽 감독의 두 발로 뛰어라에 연달아 출연하며 윤정희 문희 등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과 함께 연기를 했다. 1974년에는 육영재단 어깨동무가 제작한 영화 인간상록수에 출연해 육영수 여사를 만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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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단원과 아역배우로 활동한 만능재주꾼

망설이다 막내아들 조언에 가요계 복귀

배우로 활동하면서도 독학으로 기타 연주를 익혔다. 초등학생 시절 어머니가 성악 전공을 원하셔서 서울예고 진학을 목표로 코리뷩겐을 사사받는가 하면 피아노 연주도 사사했다.

 

피아노는 체르니 30번까지 연주해야 하는데 재능이 부족한 탓인지 피아노 선생님의 핀잔을 많이 들었다. 결국 피아노 연주에 자신감이 떨어져 서울예고 진학을 포기했다.

 

이창홍은 육군 7사단에서 군복무를 하고 제대를 한 1980년 쉘부르 오디션을 통해 통기타 가수로 활동을 시작했다. 무대에 설 무렵 권태수 선배가 부대장 역할을 했고 전영 신형원 등이 이미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이듬해인 1981년 봄 이창홍은 대도레코드사를 통해 자작곡 돌아온 거리를 발표하며 레코딩 가수가 되었다. 이후 1998년까지 모두 7장의 독집 음반을 발표했다. 나중에 자작곡 당신과 처음 만나던 그날이 신촌 일대에서 인기를 끌었다는데 방송활동을 중단한 상태여서 묻힌 노래가 되고 말았다.

 

맑고 청량한 음색을 지녀 배신자’ ‘안개낀 장충단공원등 배호의 명곡들을 새로 불러 발표한 배호 기념음반을 발표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1988년 산업안전공단의 박연홍 이사라는 분이 찾아와 가사를 내놓으며 작곡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산업안전의 노래라는 가사였는데 이창홍이 곡을 붙이고 조영남이 불러 방송국들과 기업의 각종 행사에서 많이 방송되는 곡이 되었다. 두 사람은 이 때 무재해는 좋아라는 노래도 합작으로 만들어 정수라가 불렀다.

 

가수 활동을 포기한 이창홍은 2001미춘이란 DVD 시리즈를 기획했다. ‘미춘미사리에서 춘천까지사이에 있는 유명 라이브클럽에서 노래하는 유명 포크싱어들의 공연실황을 촬영해 당시 등장한 비디오음반 DVD 시리즈로 제작한 작품이었다. 김도향 송창식 하남석 임창제 이동원 둘다섯 사월과 오월 등 유명 스타들이 라이브클럽에서 통기타 반주로 각자의 히트곡들을 노래하는 장면을 찍어 담았는데 당시 50만장이 팔릴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가수 활동을 포기하고 길기획의 황신길 대표의 제안으로 음반 기획과 제작을 배워 뮤직컴이란 회사를 설립해 음반 기획을 하기 시작했다. 대학가의 포크싱어 지망생들 위주로 동아리 활동처럼 음반을 기획했다.

 

이 무렵 무명시절의 한서경이 고연숙이라는 이름으로 레코딩을 했다. 무명시절의 주병선, 정의송 등도 이창홍의 뮤직컴을 드나들던 가수들이었다.

 

음반제작을 하면서 신곡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클럽이나 행사 무대에는 나가 노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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