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한 김창남, 안타까운 사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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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타앤스타 작성일05-06-27 15:22 조회124,92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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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이었다.
팬들은 물론이고 방송가 일부에서도 그의 건강이 그 정도까지 악화된 것을 알지 못했기에 비보를 듣고 한동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텔레비전에 나왔는데?\"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있었고, 가까운 사람까지도 \"오진(誤診)이었다는 김창남의 말을 믿고 있었다\"며 허탈해 하기도 했다.
그는 왜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났을까. 주변사람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이렇다. 고인은 오래 전부터 당뇨병을 앓았다. 오랫동안 계속해온 라디오 방송의 진행을 그만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눈이 나빠지는 것 같다\'며 휴식을 원했던 것이다.
이후 김창남은 작곡과 신곡 준비를 하는가 하면 미국도 다녀왔다. 이후 당뇨증세는 호전된듯 했지만 간 경화증세가 나타났다. \'김창남 건강 악화\' 소식이 전해진 것도 이때였다.
병원측은 간이식 수술을 권했고 그 역시 처음엔 받아들였다. 조직검사를 통해 친척 가운데 이식이 가능한 사람도 찾았다. 그 역시 기꺼이 이식에 동의했다. 하지만 얼마 후 김창남이 돌연 이를 거부했다. 측근은 그 이유를 이렇게 전했다.
\"누군가가 이식 수술 아닌 또 다른 치료방법을 권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식을 결심한 친척에게 누가 될까봐 걱정하고 있던 김창남은 결국 이식수술대신 그 방법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건강은 더욱 악화됐고 때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지난 봄철,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몇몇 방송사는 그를 라디오 진행자로 기용할 계획을 세웠다. 소식을 들은 김창남은 매우 기뻐했지만 건강은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었다. 열정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김창남은 부인과 함께 하나님을 찾으며 매달렸다. 외부와의 연락도 끊었고 미국에 유학중이던 아들도 귀국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하모니회(연주인. 작곡가. 작사가 등 50여명의 중견 음악인의 모임체) 회원들이 그의 병실을 찾았다. 격려금도 전달했다 (김창남도 하모니회 회원이다).
당시 병실을 찾았던 한 관계자는 \"김창남이 애써 웃음을 보이면서 \'여러분을 만날 수 있어서 기쁘고 다행\'이라고 하더라. 그러면서 \'하나님만 보고 있다\'고 하는데 눈물이 쏟아져 혼났다\"고 말했다.
필자가 전화통화를 시도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어떡하던 도울 방법을 찾아보자는 생각에서 였다. 하지만 가족들은 \"절대 알리지 말아 달라\"고 신신 당부 했다.
우리 가요계는 별 하나를 잃었다. 한창 때인 마흔 아홉의 나이여서 더더욱 안타깝다. 작사-작곡가로, 가수로, 방송진행자로 탄탄한 실력을 인정받은 것은 물론이고 소탈하고 솔직한 성격또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작가로 함께 일했던 필자가 그의 빈소를 찾았을때 그는 영정 사진을 통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승규 형!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야 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방송작가 이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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